(고령)높은 주산에 지산동고분군이 있는 대가야 터전 

 

- 일시: 2023-11.18~19
- 날씨: 밤에는 영하의 날씨였지만 낮은 대체로 맑음
- 몇명: 홀로

 

 

고령은 경상북도 남서쪽에 위치하며 경남과 대구와 맞닿아 있습니다.대구(大邱)는 큰 언덕이니 고령은 높은(高) 고개(嶺)인가 했는데, 높은(高) 영혼(靈)이더군요. 주산성이 있는 주산의 능선을 따라 숱한 고분들이 떼를 지어 있으니 그곳이 바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지산동고분군입니다.지산동고분군에는 왕과 순장된 사람 등을 비롯하여 많은 대가야인들의 靈(령)이 있으니 고령 지명의 유래가 바로 연결되었습니다.

 

고령은 백두대간의 줄기인 가야산이 북쪽을 감싸고,대가천과 안림천,회천과 낙동강이 비옥한 평야를 이룹니다.산과 강으로 둘러 싸여 외적의 침입이 어렵고,낙동강을 통해 밖으로 쉽게 교통 할 수 있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춘 지역입니다.빼어난 자연환경과 용맹하고 부지런한 기질이 어우러져 선사시대의 암각화,대가야시대의 가야문화,신라에서 고려시대의 불교문화,조선시대의 유교문화를 꽃피워 한국문화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 답사일정(風輪) :330km

 

대가야박물관-지산동고분군-김면장군유적지(도암서원)-안화리암각화-대가야박물관-고아리벽화고분(상무사기념관)-장기리암각화-반룡사-개실마을 점필재 김종직 종택-벽송정

 
 

2023.11.18

집안 제사를 지내고 늦은 밤 출발하여 대가야박물관 주차장에 도착하여 휴식을 취했습니다.

 

(1박)

 

2023-11.19

 

 

▷대가야박물관:  경북 고령군 대가야읍 대가야로 1203 대가야박물관

 

7시부터 탐방에 들어갔으나 박물관은 9시에 개장을 하니 우선 지산동고분군을 둘러봅니다. 

대가야박물관 좌측 혹은 우측 등 고분군에 접근 할 수 있는 여러갈래 길이 있습니다.고분의 규모는 크기가 다양합니다.주산의 능선을 따라 700여기 봉토분이 있습니다.

▷김면장군유적지: 경북 고령군 쌍림면 칠등길 138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으로 활약하다가 순국한 송암 김면(1541~1593) 장군의 묘소,신도비,도암사,도암재,도암서당을 일괄 지정한 사적지입니다.

 

김면은 조선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고령,거창 등지에서 의병을 규합,수십여차례에 걸친 전투에 승리하면서 의병장으로 추대되었고,1593년 경상우도병마절도사가 되어 선산대전을 앞두고 충청,전라도 의병과 함께 금산,개령에 주둔하고 있을 당시 병을 얻었습니다.  김면(金沔)장군이 거창 전투에서 신병으로 숨을 거두며 남긴 유언(遺言) 只知有國不知有身<지지유국부지유신> 글귀가 바위에 새겨져 있습니다."오로지 나라만이 있는 줄 알았고,내 몸이 있는 줄은 몰랐다"는 내용입니다.

 

남명 조식선생의 제자이니 정인홍,곽재우 등 그 당시 남명 조식 선생의 제자 중 의병에 참가한 제자들이 5~60분 중에서 남명기념관(산청탐방기)에서 김면장군에 대한 언급이 있어서 기억은 하고 있었습니다. 곽재우나 김면은 선비로 책을 읽으며 평화시에는 경(敬)으로 수신을 하는 선비였지만 전란시기에는 애국심으로 의(義)로 옮음을 결단하여 장군이 되었습니다. 전쟁이 나면 군량미와 병장기가 중요해집니다.자신들의 지역에서 부호였고 창의 초기에는 정부로 부터 지원을 받지못하기 때문에 자신들이 가진 재산이었던 곡식을 군량으로 내놓았습니다.노블리스오블리제의 전형입니다.    

 

 

 

오래 산중에 머물던 흰 구름(久淹山中之白雲)구엄산중지백운
홀연 푸른 구름으로 변해 나가네(倏然變作靑雲出)숙연변작청운출
사람들아 본래부터 무심하다 말하지 마라(世人休道本無心)세인휴도본무심
날 저물고 하늘 흐리면 돌아와 해를 받들지니(歲暮天陰歸捧日)세모천음귀봉일

- 송암 김면 

 

(필사)

 


안으로 들어가니 도암서원이 보입니다. 특히 5월 이후 피는 배롱나무 꽃이 장관이어서 사진가들에게 인기입니다.

김면장군 묘소로 올라가면서 뒤돌아보니 숲 사이로 해가 보입니다. 

 

묘소 앞에 송암 선생 김공(김면 장군) 신도비가 보입니다.현재의 묘소는 김면장군유적성역화사업 때 이곳으로 이장해 온 것으로 보입니다.

 


주차장으로 내려오니 어떻게 왔느냐고 물어보시는 분이 계신데 문화유산 답사차 왔다고 했더니 책을 한권 주셔서 받았습니다.코로나 시기 "임진왜란 365일 숨은 영웅들"이라는 책을 지은 저자이신데 서울신문 기자 김중열 이사였습니다.

아침 8시쯤 조금 지난 이른 시간에 아직 영하의 날씨인데 이렇게 설명을 들을 기회가 주어져 저는 참 복이 많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저도 이제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어딜가도 먼저 다가와주니 너무 좋습니다. 이런 예상치 못한 행운을 세레디피티라고 한다면 저는 문화유산답사를 다니면서 자주 경험을 하게 됩니다.

김중열 이사님은 김면 장군의 후손으로 간밤에 제사를 지낸 모양이었습니다.김면장군 사후 후손들이 굉장히 힘들었다고 하는데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은 지금도 어렵게 살지만 친일후손들은 기득권이 되어 살고 있는 현실과 오버랩됩니다.

 

 

▷안화리암각화: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안화리 산1

 

네비게이션이 교행이 불가능한 아주 좁은 길로 안내를 합니다.어쩔수 없이 강으로 내려가니 안림천입니다.안림천 낮은 다리를 건너는데 고고(高孤)한 새가 서 있는 뒤로 중첩되는 산그리메가 아주 분위기를 좋게 만듭니다.이걸 보라고 네비가 이곳으로 길안내를 했나봅니다.이런 것 또한 세렌디피티(?)일까요.제가 그렇게 느끼면 맞겠죠.


안림천을 건너니 송암정이라는 활터가 보입니다. 김면장군의 호를 활터의 이름으로 사용했습니다. 한때 저도 국궁을 열심히 연마했는데 팔꿈치 엘보가 와서 쉰 것이 제법 시간이 흘렀습니다.


안화리 암각화는 아무리 쳐다보아도 바위그림 암각인지 자연스럽게 균열이 생긴것인지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훼손이 심합니다.4개의 검파형과 1개의 동심원 문양이 묘사되어 있다고 하는데 저는 모르겠습니다.청동기 시대 신앙 의례를 행하던 장소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이제 박물관 개장 시간이 되어 다시 대가야박물관으로 향합니다.안림천변의 물새와 풍광들이 자주 저를 셔터 누르게 만듭니다.

▷대가야박물관

 

9시 개장시간에 맞추어 대가야박물관으로 오니 지산동고분군이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맞추어 관람료를 무료로 개방한다고 합니다.무료는 2024년 4월까지입니다.

 

주산을 따라 지산동고분군들이 있는 장면을 아주 멋지게 찍은 사진들이 보입니다.
고령(
靈)의 높을 高는 주산이요.영묘할 靈은 지산동고분군에 있는 영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에 세계유산에 등재된 가야 고분군은 경북 고령 지산동 고분군을 필두로 경남 김해 대성동 고분군, 함안 말이산 고분군,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고성 송학동 고분군,합천 옥전 고분군, 전북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 등 7곳으로 연속유산입니다.가야고분군 중에서 지산동고분군은 유산구역면적으로 보나 완충구역면적으로 보아도 가장 면적이 넓습니다. 그 만큼 대가야 지역이 군사적 측면과 경제적 측면을 아울러 모두 번성할 수 있었던 지역이라는 것이 증명된 것입니다.가야의 유적은 남원까지 펼쳐졌습니다.

 

 

대가야의 시조 뇌질주일은 금관가야 수로왕의 형이었다고 합니다.가야에는 2가지 형태의 건국신화가 전해오는데 하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6개의 알에서 가장 먼저 태어난 동자가 금관가야의 시조인 수로왕이 되었다는 금관가야 중심의 난생 설화이고,다른 하나는 "가야산신 정견모주와 하늘신 이비가지가 감응해 낳은 두아들 중, 형은 대가야의 시조인 뇌질주일[이진아시왕]이 되고 동생이 금관가야의 시조인 뇌질청예[수로왕]이 되었다는 대가야 중심의 시조형제설화입니다.대가야는 자신들 중심의 건국신화를 만들어 왕실의 신성성을 강조하였습니다.

   


개포리 석조관음보살좌상으로 높이는 1.5m이고 머리에는 토속화된 모습의 보관을 쓰고 손에는 연꽃을 들고 연꽃 모양의 대좌에 앉아있습니다.고려초기 985년에 만들었습니다.

반룡사 다층석탑입니다.현재 반룡사에는 모조작품이 있고 실물은 여기 박물관에 있습니다.14층인데 12층이라고 하니 아래부분의 연꽃 모습이 있는 부분은 몸돌이 없어진 기단으로 보입니다.

송암 김면장군 문집도 보입니다.

 

박물관을 둘러보고 대가야왕릉전시관까지 둘러 본 후 밖으로 나왔습니다.

▷고아리벽화고분: 경북 고령군 고령읍 고아리 산13번지

고아리벽화모형관이 있는데 안으로 들어가면 벽화고분의 모형이 있어서 안을 들여다 볼 수 있는데 실제로 벽화의 모습은 오랜세월에 훼손되어 보이지 않고 영상으로 보여줍니다.수많은 연꽃 문양이 벽화로 있었던 것 같은데 그 시기에 벌써 불교의 영향을 받은 것인지는 알수 없습니다. 아마도 연꽃은 재생이나 환생의 의미였겠죠. 

 

▷상무사기념관

고아리벽화고분모형관 바로 옆에 있습니다.보부상단에 관한 유적인데 이미 박물관에서 "고령좌지사 물금장(勿禁杖) "이라는 지팡이를 보았는데 지휘봉이라고 하지만 실용측면에서 보면 지팡이 용도와 방어용 지팡이로 보였습니다.  

 

보부상단은 생선,소금,목기,토기,수철( )등 다섯 가지 물품의 판매를 독점했다고 합니다.고령 보부상단은 낙동강을 교통으로 무역한 대가야의 후손들로 보아야겠네요.

장기리 암각화 : 경북 고령군 대가야읍 아래알터길 11-1

 

이곳 암각화는 보존상태가 아주 좋은 편입니다.문양을 보니 아프리카가 떠오르고 사람모습의 얼굴 윤곽은 현재의 두상 형태는 아니고 흡사 원숭이에 가까운 모습이었습니다. 사실은 검파형(돌칼 손잡이 형태)이라고 하고 동심원은 태양으로 보면 맞을 것 같은데 청동기 시대 풍요와 다산을 기원했다고 합니다. 

 

회천에서 가까운 바위인데 암각화는 하천 근처에 모두 있는 특색이 있습니다.특히 울산,남원,안동의 대곡천에 있는 암각화가 유명합니다.

▷ 반룡사

 

보호수에 가까운 거목 아래 옹기종기 귀여운 부도밭이 보입니다.거북이가 길안내를 하는 것 같습니다.풍화루 누각은 무인카페 역할을 하고 이미 다층석탑은 원형은 박물관에서 보았으니 새로 중창불사한 반룡사 다른 것에는 눈길이 잘 가지 않습니다. 그래도 대적광전과 용왕당까지 모두 둘러보고 나옵니다.

 

반룡사는 동화사의 말사로 신라 애장왕 3년(802년) 해인사와 함께 창건된 절로 고려 중기에 보조국사가 중건하였고, 고려 공민왕 때 나옹선사가 다시 중건하였습니다. 대가야의 후손들이 신령스러운 용의 기운이 서려 있는 곳에 세웠다고 해서 반룡사라 이름 붙였다고하는데 임진왜란의 병화로 소진된 것을 사명대사가 중건하였지만, 화재로 전소되어 1764년 영조 때 대웅전과 풍화루를, 1930년경 다시 중수하였으며 1996년 대적광전을 건립하여 오늘에 이릅니다.

▷개실마을 점필재 김종직 종택: 경북 고령군 쌍림면 합가리 243-5

문충공의 집답게 ‘문충세가(文忠世家·문한과 충의로 이뤄진 집안)"라는 현판이 보입니다.

선산김씨 문충공파 종택으로 문충공 점필재 감종직은 고려말 정몽주 길재의 학통을 이은 도승지 김숙자로 부터 학문을 익히면서 조선시대 도학의 정맥을 계승하였습니다.조선 성종때에는 도승지,예조참판 등을 역임하였고 연산군때 무오사화로 관직이 삭탈되고 무덤이 파헤쳐지는 수모를 당하기도 하였으나 중종반정으로 신원이 회복되었습니다.

 

佔畢齋 寫牧丹(점필재 사목단)

 

눈 속의 찬 매화와 비 온 뒤의 산 경치 / 雪裏寒梅雨後山 설리한매우후산

구경하긴 쉬우나 그림 그리긴 어렵네 / 看時容易畫時難 간시용이화시난

시인의 눈에 들지 않을 줄 일찍이 알았더라면 / 早知不入時人眼 조지불입시인안

차라리 연지 가져다 모란이나 그릴 것을  / 寧把臙脂寫牧丹 영파연지사목단

 

눈 덮힌 산에 핀 매화, 비온 뒤의 산 등 맑고 깨끗한 이미지를 그린 시는 알아주지 않고 
부귀를 상징하는 모란과 같은 알록달록한 그림만 알아주는 세태에 대한 풍자를 뜻을 담고 있습니다.이를 통해 자신의 올곧은 시세계를 은밀하게 자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필사)

▷벽송정:경상북도 고령군 영서로 3009 (쌍림면)

도로변 산 아래에 있습니다.벽송정은 임진왜란 이후 고운 최치원 선생의 정신을 기리고 유생들을 교육하기 위한 정자라고 합니다.원래 봉진마을 앞 안림천변에 있었지만 1930년경 대홍수 이후 이곳으로 옮겨진 것이라고 합니다.문이 잠겨 안에 들어가지 못했지만 경사진 담 밖에서 줌으로 당겨 사진을 찍어보니 편액의 시도 보입니다.

 

고운 최치원 

늘그막에 돌아와 벽송정에 누우니
한 가닥 가야산이 아련하게 보이네. 

暮年歸臥松亭下 모년귀와송정하
一抹伽倻望裏靑 일말가야망리청


孤雲先生

....


일두 정여창

구름이 들판에 자고나니 벽송정 거문고가 젖어들고

산에 비가 오니 연꽃 못의 물고기가 놀라 뛰는구나 

 

松亭琴濕野雲宿 송정금습야운숙
荷沼魚驚山雨來 하소어경산우래

 

 一蠹先生

 

(필사)

 

한훤당 김굉필

벽송정에서 지지당에게 드림

냇가 정자는 트여있어 근심은 벌써 씻기우고

빗 속에 읊조리기 다했어도 흥은 아직 남아

지금부터 오가며 배운 가르침을 깊이 새겨

나라의 기풍을 완전히 뜯어 고치고자 하네

 

碧松亭呈止止堂 벽송정정지지당

川上亭開愁已洗 천상정개수이세

雨中吟罷興猶存 우중음파흥유존

從今來住承提耳 종금래주승제이

托庇期將到轉坤 탁비기장도전곤

寒暄堂先生

지지당(止止堂)김맹성(金孟性,1437~1487)은 김종직(金宗直)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는데 1476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사간원의 헌납과 정언을 지냈습니다.1478년 도승지 임사홍(任士洪)을 탄핵한 죄로 약 4년간 고령에 유배된 적이 있는데 그 무렵 지은 시일 것입니다.참고로 한훤당은 1454년생으로 지지당보다는 17살이나 어립니다.그가 스승인 김종직과 갈라섰지만 지지당은 진심으로 존경하는 마음을 가진 것으로 보입니다.

 

 

대가야는 어렴풋 가야산과 관련이 깊다고 생각했는데 속을 들여다보니 주산의 지산동고분과 더 밀접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무엇보다 대가야 유적지를 들여다보는 것은 10km 이내 이동거리만 있으면 그 속에 다 있었습니다.동선이 짧아서 좋았습니다.청동기 암각화부터 조선의 점필재 종택까지 한국문화를 선도한 고령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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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바람처럼, 흐르는 물처럼
어진 산처럼,방랑의 은빛 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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